바바는 이미 펜두와 에루치와 카카와 차간 등에게 4,000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프라사드를 나누어 줄 뜻을 알렸다. 메헤라바드 만달리는 아흐메드나가르 지구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동원되었다. 그들은 통행증을 발급하고, 두 야드짜리 흰 천 조각 수천 장과 1만 루피어치의 땅콩을 샀다. 그 땅콩은 한 사람 몫씩 16파운드씩 천에 싸서 바바가 프라사드로 줄 수 있게 꾸러미로 묶어 두기로 되어 있었다.
1946년 3월 10일 일요일, 바바는 쿠쉬루 쿼터스로 가서 만달리와 누세르완 사타, 바바다스, 비부티, 판도바, 마루티 R. 바갓, 나발 피로디아, 사로쉬, 그 밖의 사람들과 그 계획을 상의했다.
바바가 지시했다. "사로쉬는 교통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땅콩 자루를 옮길 트럭과, 가난한 사람들을 오가게 할 버스를 준비해야 합니다. 에루치는 전반적인 준비를 감독해야 하고, 펜두는 입장권을 배부하면서 다른 일들도 살펴야 합니다."
그의 뜻에 따라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고, 누세르완과 다른 현지 사람들이 만달리를 도왔다.
3월 16일 토요일 아침 6시 30분, 바바와 카카와 구스타지는 샹카르가 모는 폰티액을 타고 쿠쉬루 쿼터스로 갔다. 여기에 아디 시니어가 합류했고, 그들은 메헤라바드로 가서 돈을 태웠다. 에루치와 펜두와 안나 104와 비부티와 바이둘과 누세르완과 잘바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버스를 타고 뒤따랐다. 바바는 콜가온 마을의 가난한 사람 1,000명에게 프라사드 꾸러미를 나누어 주고 오전 11시에 돌아왔다. 그는 악바르 프레스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잠가온의 또 다른 가난한 사람 1,000명에게 더 많은 프라사드 꾸러미를 나누어 주었다. 다음 날 바바는 미라지가온 마을의 주민 2,000명에게도 같은 일을 했다. 세 곳 모두에서 바바는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기 위해 따로 마련된 방에 앉았다. 바바는 사람마다 발을 씻겨 주고, 그 발에 머리를 대고, 그런 다음 신성한 선물을 건넸다.
그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는 눈먼 이들과 거동이 불편한 이들과 병든 이들도 여럿 있었다. 모두는 하나님-인간의 도움을 받도록 각별한 배려 속에 모셔 왔다. "그들은 대양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지." 시대가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저마다 내면에서 무언가가 일어났고, 주는 이가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느꼈어."
이런 행사들이 끝난 뒤 바바는 단식을 풀었다. 그는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는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식을 지키고 있었다.
1946년 3월 22일 금요일, 바바는 메헤라바드로 가서 언덕에서 여자들과 하루를 보냈다.
뒤에 그는 남자들에게 은밀히 알렸다. "곧 나는 언덕의 아슈람을 해산하고 여자들을 모두 각자 집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닥쳐올 개인적인 위험에 맞설 수 있게 됩니다. [남자] 만달리는 나와 함께 남겠지만, 나와 동행할 소수만이 그 위험에 맞설 만큼 용감할 것입니다."
바바는 4월 13일 이른 아침 메헤라바드로 돌아왔고, 오전 10시에 다시 핌팔가온으로 차로 돌아갔다. 그날 아디 시니어는 사로쉬와 빌루의 집에서 바바의 점심을 가져왔고, 오후 1시에는 바바를 쿠쉬루 쿼터스로 차에 태워 갔다. 그곳에는 가데카르와 "새로운" 연인인 바푸사헵 바히르지 신데가 바바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핌팔가온으로 돌아가기 전에, 바바는 아디와 함께 다시 메헤라바드에 들렀다.
1946년 4월 첫째 주에는 라이푸르의 잘 케라왈라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바바가 그토록 강렬하게 작업하던 앙기라스 리시 언덕의 오두막이 들불로 타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바바는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거기서 시작된 그의 작업의 마지막 단계가 이제 끝났음을 곁에 있던 이들에게 알렸다.
1932년에 바바를 만났던 엘리자베스 패터슨의 어머니가 1946년 3월에 세상을 떠났고, 바바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전보를 보냈다. "당신의 어머니는 신성한 우주적 어머니께로 가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