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1-4일:
바바는 가운데의 작은 오두막에서 매일 세 시간씩 알리 샤와 작업했다. 에루치와 펜두와 카카는 야간 경비를 맡았다. 구스타지는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 바바의 동굴 아래를 지켰고, 아디는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리고 다시 구스타지가 3시 이후부터 지켰다.
바바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 앞으로 온 편지와 전보는 그에게 전달되었다. 11월 3일에는 말콤 슐로스에게서 전보가 왔는데, 게렛 포트가 10월 26일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45세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자살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나식를 떠났던 그의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게렛은 인도를 떠난 뒤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빈궁해졌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1945년 11월 4일 일요일, 바바는 알리 샤와의 작업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매우 흡족해하며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101명의 머스트를 접촉해 이루고자 했던 일은 밥지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날 오후 1시, 바바는 그를 에루치와 함께 아흐메드나가르로 돌려보냈다. 알리 샤는 네 사람이 메는 덮개 달린 가마에 실려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옮겨졌다.
1945년 11월 5일 월요일:
바바는 오전 6시에 일어나 목욕한 뒤, 계획대로 은둔에 들어갔다. 오전 7시부터 그는 자기 오두막 안에서, 자신을 위해 가져다 둔 방석이 있는 네모난 나무 좌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밤늦게까지 은둔을 계속했으며, 그동안 음식도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디 시니어와 펜두와 구스타지는 오두막 사방을 엄중히 지키며 새들조차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아디는 바바가 허락해 준 대로 경비를 서는 동안 조용히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바바가 은둔 중 어떤 식으로인가 사용한 조약돌 무더기가 만달리에게 전달되었고, 그것들을 보관하라는 말을 들었다. (바바는 그 돌들로 무슨 일을 했는지, 또 그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1945년 11월 6일 화요일:
바바는 오전 6시에 일어났지만 은둔에 앉지는 않았다. 대신 바바는 자신에게 데려온 가난한 사람 51명의 발을 씻겨 주고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었다. 잘 케라왈라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오는 일을 다모다르라는 하인에게 맡겼고, 그는 지시대로 인근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궁핍한 사람들을 언덕으로 데려왔다. 바바는 오두막 하나 안에서 그들의 발을 씻기고 각자에게 5루피씩 주었으며, 정오까지 그 일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