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6일 아침 카카와 바이둘과 함께 머스트 작업을 위해 길을 떠나, 먼저 빌라스푸르 지구의 참파 마을로 갔다. 가장 중요한 접촉 대상은 강 근처의 사원에 살던 늙은 사두 타파스비 마하라지였다.
그날 저녁 에루치와 구스타지, 펜두는 캘커타행 기차에 올랐다. 바바와 카카, 바이둘은 참파에서 그 기차에 올라 그들과 합류했다.
1945년 10월 7일 일요일, 바바와 카카, 바이둘은 머스트를 접촉하기 위해 카라그푸르에서 내렸고, 에루치와 구스타지, 펜두는 캘커타로 계속 갔다. 그러나 그 머스트가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린 탓에, 바바는 카라그푸르에서 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바바는 여정을 계속해 그날 저녁 캘커타에 도착했고, 치타란잔 애비뉴의 한 호텔에 묵었다.
다음 날 바바는 일행 각자에게 임무를 맡겼다. 이틀 안에 펜두와 에루치는 중하층 사람 1,001명을 찾아 데려와, 바바의 접촉과 프라사드를 위해 한곳에 모아야 했다. 바이둘은 캘커타에서 머스트들을 찾아 그들의 이름과 위치를 목록으로 작성해야 했다. 카카와 구스타지는 시내에서 이미 알려진 머스트들 가운데 선별된 이들을 접촉하고 있던 바바 곁에 머물러야 했다.
9일에 펜두와 에루치는 자기들의 일을 크게 수월하게 해 준 관리 세 사람, 곧 캘커타 시장과 한 행정관, 전직 보건관을 만났다. 그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칼리가트 지역의 한 다람샬라를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바바의 작업을 위해 내부에 칸막이를 세우고 텐트도 쳤다. 바바가 프라사드를 나누어 줄 한적한 공간도 마련되었고, 구내도 쓸고 말끔히 청소되었다. 또한 가난한 사람 1,001명, 곧 남자 601명과 여자 400명에게 연락해 11일 이른 아침 다람샬라에 나오라고 일렀다.
그날 새벽이 밝을 무렵 에루치와 펜두는 다람샬라에 나와, 찾아온 1,001명의 남녀에게 인쇄된 표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만달리는 그날 하루 종일 단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바가 도착했고, 행사는 8시에 시작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 조로 나뉘었는데, 남자 두 조와 여자 한 조였다.
바바는 그날 오후 3시 30분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모두 씻겼다. 만달리는 물과 비누를 대주고, 사람들이 다음 방에서 바바의 프라사드를 받을 수 있도록 줄을 세우는 일을 도왔다. 각 가난한 사람의 발을 씻기고 닦은 뒤, 바바는 옆방으로 가서 스승의 금전적 선물인 닥시나를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