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이어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장관이 된 뒤에는 세상을 환영으로 보고, 하나님만을 유일한 실재로 여기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인류의 유익을 위해 언제나 나의 지시에 따르십시오."
마하라자는 깊이 감동했고, 바바의 말에 동의하며 아들들과 함께 떠났다.
9월 2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의 정식 조약에 서명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나라얀 마하라지는 그곳에서 열리던 대규모 야그나(신성한 불)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8월에 방갈로르로 갔다. 이 특별한 행사를 위해 인도 전역에서 헌신자들이 모여들었고, 나라얀은 수천 명에게 다르샨을 주었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마하라지는 말했다. "전쟁은 끝났다. 내 일도 끝났다." 다음 날인 1945년 9월 3일 월요일, 나라얀 마하라지는 예기치 않게 예순 살의 나이로 육체를 떠났다. 그의 육신은 방갈로르에서 화장되었고, 5일에는 재의 절반이 케드가온의 그의 아쉬람에 묻혔다. 나머지 재는 베나레스로 옮겨져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나라얀 마하라지가 육체를 떠난 그날, 메헤르 바바는 하이데라바드에서 머스트들과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때로는 같은 머스트와 여러 차례 작업하곤 했다. 그날 그는 캡틴이라 불리는 비범한 머스트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접촉했다. 캡틴은 아디 시니어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고 싶다고 했고, 바바와 아디, 그 머스트가 모두 차에 올랐다. 그 머스트는 갈 곳을 일러 주었고, 먼저 어떤 집 앞에 차를 세우게 한 뒤 마치 제 집인 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음에는 그를 세쿤데라바드 기차역으로 데려갔고, 마지막에는 하이데라바드의 어느 특정한 사당으로 다시 데려가 그곳에 두고 왔다.
바바의 허락을 받은 뒤, 비슈누는 칼레마마의 도움을 받아 마하발레쉬와르 근처 와이 마을에서 2마일 떨어진 파사르니의 한 나와브 방갈로를 확보했다. 바바와 여성들은 본채에 머물고, 남성 만달리는 방갈로 담장 밖 하인 숙소에 머물 예정이었다. 이 준비가 끝난 뒤, 바바와 남녀 만달리는 1945년 9월 6일 목요일 하이데라바드를 떠났다. 다음 날 푸나에 도착한 바바와 여성 만달리는 빈드라 하우스에 이틀간 머물렀다.
가이마이는 바바가 오면 언제나 무척 기뻐했고, 자기 집을 곧 그의 집처럼 여겼다. 바바가 여성 만달리와 함께 빈드라 하우스에 머무를 때마다 파파 제사왈라와 그의 아들 메헤르완은 차고로 옮겨 가야 했다. 여성 만달리와 접촉하지 않도록 파파와 메헤르완은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고, 변기까지 밖에 놓아 두었지만, 바바는 늘 그곳으로 와 그들을 만나 주었다. 에루치나 바이둘처럼 바바를 수행한 남성 만달리도 차고에 머물러야 했고, 식사도 그곳으로 보내졌다.
바바는 형제 베헤람과 그의 아내 페린,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보러 바바 하우스로 갔다. 페린은 임신 중이었고 쌍둥이를 밴 상태라는 말을 들은 터였다.
바바는 베헤람에게 말했다. "쌍둥이가 발부터 나오면 페린은 죽을 것입니다."
이 말에 두 사람은 몹시 걱정했지만, 바바는 페린을 안심시키며 "계속,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의 나자르가 당신 위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