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소녀는 노리나와 엘리자베스와 함께 4년 동안 지냈다. 라비아 마틴도 그들과 함께 머물라는 초대를 받았다.
70세의 아다 "라비아" 마틴은 1911년 이나얏 칸에게 수피즘 입문을 받았고, 훗날 미국 수피즘의 수장, 곧 무르시다가 되었다. 그녀는 194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리나와 엘리자베스를 만났는데, 그때 두 사람은 바바가 제안한 미국 센터의 후보지를 조사하러 캘리포니아에 와 있었다. 노리나의 공개 강연 가운데 하나에서 그들의 스승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라비아는 메헤르 바바가 비범한 영적 인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스승에 대한 내적 체험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샌프란시스코 근처 페어팩스에 있는 자신의 수피 수련 센터를 바바가 쓰도록 내놓았다. 엘리자베스는 인도에 있는 바바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라비아의 제안은 진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고, 우리 모두 그녀가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가장 진보하고 이해심 깊은 영혼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 뒤 3년 동안 라비아 마틴은 바바의 글을 열심히 연구했고, 그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한 뉴욕시를 거듭 방문하는 동안 노리나와 엘리자베스와 더욱 가까워졌고, 바바와 함께한 삶과 그의 철학에 대한 두 사람의 설명은 바바가 우리 시대의 핵심 영적 인물이라는 확신의 중심 기둥을 그녀 안에 빠르게 세워 주었다. 1945년 4월, 노리나와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자기들과 함께 살자고 초대했다. 그녀는 뉴욕에서 그들과 합류한 뒤 7월까지 머틀 비치에도 함께 머물렀다. 그 몇 달 동안 라비아가 겪은 내적 체험은 바바가 수피즘의 살아 있는 구현이자 하나님의 신적 화현, 곧 라술 또는 아바타라는 그녀의 직관적 이해를 더욱 확증해 주었다.
1945년 5월 머틀 비치에서 라비아는 편지로 바바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 달라고 청했고, 바바가 이를 받아들이자 다시 편지를 보내 수피 교단의 영적 지도에 대한 책임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으며, 바바는 그것도 수락했다.
바바의 답장을 받은 뒤 1945년 가을, 라비아 마틴은 자기 수피 학생들에게 메헤르 바바의 삶과 일과 메시지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아 내야 할 수피즘의 본질이라고 알렸다. 또 자신의 일은 이제 바바에게 바쳐졌으며, 그들이 자기 수피 단체에 남고자 한다면 영적으로는 그분께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라비아는 엘리자베스와 노리나와 신중히 길러 온 관계를 어느 정도 설명한 뒤, 며칠 안에 두 여성이 시애틀에서 온 세 번째 헌신자 밀드레드 카일과 함께 자신을 방문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알렸다. 그녀는 이어서 페어팩스 수피 학교 부지에서 큰 모임이 열릴 것이며, 그 자리에서 손님들이 자기 수피 입문자들에게 메헤르 바바에 대한 가까운 지식과 관계에서 오는 유익을 전해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