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한쪽에는 칸도바(크리슈나)의 사원이 자리한 작은 언덕이 있었다. 저택 뒤에는 템비 언덕이 있었는데, 나중에 바바가 그곳에서 한 일 때문에 마노나시 또는 은둔의 언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길을 조금만 따라가면 경치 좋은 핌팔가온 호수가 있었고, 그것은 바바가 거처로 택한 이 성스러운 장소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그 일대는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외진 곳이었다.
바바가 처음 그 부지를 보러 갔을 때는 약 60피트 x 40피트 크기로 두 방으로 나뉜 오두막 한 채뿐이었다. 그밖에 자동차 창고, 마구간, 부엌, 부속채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낡아 허술했지만, 바바는 그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아우랑가바드에 머무는 동안 남자 만달리가 작은 집을 짓고 수리도 해두었다.
핌팔가온으로 옮긴 뒤 바바는 메헤라바드에서 라노를 불러 몇 주 동안 머물게 했고, 다른 때에는 키티를 불렀다. 하지만 바바는 다른 남녀 만달리를 만나기 위해 정기적으로 메헤라바드까지 차를 몰고 갔다.
또한 바바는 머스트를 찾아 아디 시니어와 끊임없이 밖으로 나갔는데, 앞서 말했듯 아디는 매일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와서 바바를 차로 모셨다. 바바는 때때로 쿠슈루 쿼터스에 들러 아디의 어머니 굴마이를 만나고, 아크바르 프레스에도 들러 사타 가족을 보곤 했다.
28세의 고허 R. 이라니는 의과대학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지내기 위해 아흐메드나가르로 왔다. 고허는 바바와 함께 있기를 몹시 원했지만, 어머니 코르셰드는 또 다른 딸이 메헤르 바바의 아쉬람에 들어가려고 자기 곁을 떠난다는 생각에 망연해져 울었다. 고허의 언니 케이티는 1938년부터 상주 여성 만달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므로, 어머니는 고허가 의사로 일하며 집에서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고허의 아버지 루시 팝은 반대하지 않았고, 그것이 고허의 진정한 뜻이라면 그녀가 바바와 함께 남기를 바랐다. 고허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 와서 바바와 함께 지내겠다고 편지했다.
바바는 아디 시니어를 통해 그녀를 불러,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고허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제 삶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생각만 해도 계속 우십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한동안 너를 여기 두었다가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려라" 하고 바바가 일렀다.
그래서 1944년 핌팔가온에 머무는 동안 바바는 이런 문제들을 의논하려고 고허를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