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머스트는 프렘 빌라에서 바바와 약 20분 동안 단둘이 앉아 있다가, 방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오며 "이 정글엔 가시가 너무 많다!" 하고 외쳤다.
그 머스트를 다시 바바와 앉게 하려고 달랬지만, 15분 뒤 그는 "못이 나를 찔렀어, 이 고통은 견딜 수 없어!"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왔다.
카카는 그 머스트가 바바에게서 받은 어떤 어려운 영적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이 밥은 다시 쿨다바드로 데려다주었고, 카카는 그를 7일 동안 매일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 머스트는 다음 날 카카를 따라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바바가 매일 저녁 그의 거처로 가서 접촉했다.
14일 바바는 시칸데르라는 머스트와 한 시간 동안 일했다. 같은 날 바바는 차를 타고 나가 머스트 두 명을 더 접촉했다. 17일 이른 아침 그는 쿨다바드로 가서 마이 밥과 바킬왈라라는 또 다른 머스트를 접촉했다. 두 머스트 모두 그 접촉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바바는 흡족해했다.
1944년 2월 21일, 바바의 형제 아디 주니어와 빌루의 여동생 굴루가 푸나에서 결혼했다. 바바는 아우랑가바드에서 축복을 보냈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22일 이른 아침, 아디 시니어가 바바를 차에 태우고 하루 일정으로 토카에 다녀왔다.
벵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바는 그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 곡식과 옷을 나눠 줄 계획을 짜느라 분주했다. 에루치와 잘바이가 그 일을 돕기 위해 푸나에서 불려 왔다. 첫 번째 배급 프로그램은 1944년 2월 25일 금요일에 열렸고, 그 자리에서 바바는 아우랑가바드 타운 홀에 모인 가난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천 2미터와 기장 3시어를 나누어 주었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바바는 거의 1,200명에게 쉬지 않고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었다. 곡식은 트럭으로 실어 왔고, 만달리가 그것을 천 2미터씩으로 싸서 묶어 두었다. 이런 묶음을 만드는 일은 한동안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놀라운 점은 그때가 엄격한 배급제 시기라 시장에서는 기장을 구할 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기장과 천은 큰 어려움 끝에 정부를 통해 조달했다.
게다가 궁핍한 사람들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다. 에루치는 통가를 타고 마을을 돌며 확성기로 이렇게 외쳤다. "가난한 형제들이여! 2월 25일 오후 1시에 아우랑가바드 타운 홀에서 무료 조와르[기장]와 천을 나누어 드립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에루치가 이렇게 알리고 다니자, 못마땅해하던 몇몇 시민들이 신랄하게 "우리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야 이런 배급이 오는군."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통가를 따라다니며 웃으면서 에루치의 말을 흉내 냈다.
1944년 3월 3일 금요일, 쿨다바드의 바니 베굼 정원에서 두 번째 배급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이는 바이둘, 카카, 에루치, 아디 시니어, 잘바이가 준비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