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또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차파티 1만 개를 무료로 나누어 주라고 지시했다. 바바는 그 차파티들에 축복을 내리고, 에루치, 바이둘, 카카, 바바다스와 함께 인력거를 타고 직접 나가 로티를 나누어 주었다. 이 일은 나흘 내지 닷새에 걸쳐 이루어졌다.
어느 날 바바는 단것을 가져오게 해 그것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랐다. 그는 그날 차파티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그 단것 한 조각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지시하면서, 실제로 삼키든 삼키지 않든 반드시 입에 넣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 굶주린 사람들은 기름진 음식을 쉽게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기근 때문에 캘커타에서는 수천 명이 죽어 가고 있었다. 전쟁 중 식료품 값이 폭등해 중산층조차 먹을거리를 사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죽은 사람들을 처리할 적절한 위생 조치가 없어서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었다. (한 추산에 따르면 이 시기 벵골의 사망자 수는 300만 명에 이르렀다.)
데쉬무크가 바바에게 말했다. "콜레라가 도시 전체로 퍼지고 있으니, 우리가 마실 물은 끓여야 합니다." 바바는 동의했고, 데쉬무크는 끓인 물을 담아 둘 토기 항아리를 가져왔다. 어느 날 데쉬무크가 바바다스와 함께 밖에서 차파티를 나누어 주다가 목이 말랐지만, 호텔 밖의 물을 마시기가 두려웠다. 다음 날 그는 그 토기 항아리를 가지고 가서, 바바다스에게 그것을 머리에 이고 가게 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다. 데쉬무크가 앞서가면 바바다스는 머리 위에 항아리의 균형을 잡은 채 될 수 있는 대로 뒤따랐다.
바바는 찬지와 아디 시니어를 먼저 러크나우로 보내 그곳에서 빈민 급식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했다. 바바는 캘커타를 떠나기 전에 자선 활동을 하는 여러 지역 구호소를 방문했고, 한 구호소에는 다가오는 겨울 추위로부터 가난한 아이들을 보호할 조끼 2,000벌을 사서 나누어 주도록 돈을 주었다. 바바는 1943년 10월 21일 오후 9시에 러크나우에 도착해, 유일하게 빈방이 있던 낡은 센트럴 호텔에 묵었다. (전구도 없고, 침대는 먼지가 수북했으며, 수도는 일정한 시간에만 나오고, 식수용 컵과 플라스크조차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