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가 그린, 앉아 있는 바바의 대형 그림 <아바타>는 쿰바 멜라 기간 동안 스리바스타바의 집에 전시되도록 그에게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바는 그 그림이 자신이 알라하바드를 떠난 뒤에야 스리바스타바에게 도착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바바가 알라하바드에 가기로 한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마야는 평소처럼 반대를 일으키는 듯했다. 인도 정부는 군사적 필요 때문에 알라하바드로 가는 모든 특별 급행열차를 취소했다. 열차 수뿐 아니라 남아 있는 열차의 객차 수까지 줄어들었다.
바바는 1941년 12월 29일 월요일 이른 아침 메헤라바드를 떠나 바이둘, 에루치, 차간, 구스타지, 카카, 펜두, 사박과 함께 기차역으로 갔다. 역에서 그들은 군 병력 수송 특별열차들 때문에 선로가 막혀 있어 알라하바드행 열차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지체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바바는 사로쉬가 마련한 전세버스로 만마드 철도 분기점까지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그들은 쉬르디와 사코리를 지났고, 바바는 자신과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마지막 만남이 이루어졌던 다히가온을 가리켰다. 남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바바가 계획을 바꾸어 버스로 만마드까지 가게 된 것이 정말로 "예기치 못한" 사정 때문인지 속으로 궁금해했다. 아니면 더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곧 바바가 두 스승의 아쉬람에 깃든 영적 분위기를 먼저 거친 뒤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것인지.
버스가 만마드에서 10마일 떨어진 안카이 언덕에 가까워지자, 바바는 아침 식사를 위해 개울가 근처에 멈추기로 했다. 모두가 식사를 즐기는 동안, 바바는 거대한 반얀나무 아래에서 남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안카이는 바바가 구스타지, 플리더, 사박, 바바난다를 은둔하도록 보낸 곳이었고, 또 구스타지가 파파 제사왈라가 그 무리에게 가한 가혹한 대우와 규율에 반발했던 곳이기도 했다.
한편 만달리는 만마드역에 도착했을 때 기차 객실에 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차는 여러 3등 객실에 넉넉한 자리를 둔 채 도착했다. 그들은 거의 비어 있는 객실 하나를 자기들만 차지할 수 있었다.
바바가 말했다. "그 객차가 알라하바드까지 직행하고 중간역에서 떼어지지 않는지 꼭 확인하십시오."
만달리는 물어보았고, 그 객실이 알라하바드까지 곧장 간다는 확답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