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의 일환으로 1941년 9월 9일 사박은 와이 마을에서 가난한 거지 15명을 데려왔고, 바바는 자기 방갈로에서 그들을 목욕시키고 먹이고 입혔다.
판치가니의 날씨는 바바가 그곳에 머문 첫 주 동안 화창했지만, 11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 동안 바바는 하루 한 끼의 적은 식사로 단식을 계속했다. 며칠 동안은 갓 짜낸 오렌지 주스만 마셨고, 때로는 물이나 차만 마셨다. 바바는 12일에 오렌지 주스 단식을 시작했고, 그날 다시 은둔에 들어갔다. 그는 아흐레 동안 단식을 계속했다. 그동안 비가 계속 억수같이 쏟아져 시장에서 과일을 구할 수 없었으므로, 바바는 사흘 동안 물과 차만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차티 바바는 1941년 9월 12일 다시 성을 냈고, 바바는 15일에 바이둘과 크리슈나를 붙여 그를 나가파티남의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 머스트는 거의 2년 동안 줄곧 바바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떠날 때 그 머스트는 하염없이 울었다. 바바 역시 슬픔으로 가득 찬 듯 보였다. 마가렛 크라스케는 "차티 바바의 차가 떠나갈 때만큼 바바의 얼굴에서 큰 슬픔을 본 적은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차티 바바를 동행한 바이둘은 바바에게서 여행 중에는 꼭 수돗물만 마시고 강물이나 시냇물, 우물물은 마시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이둘이 차티 바바를 나가파티남에 데려다주고 돌아왔을 때 그는 심한 장티푸스를 앓고 있었다.
바바가 그에게 물었다. "내 명령을 어겼습니까?"
"너무 목이 말랐고, 몇 마일을 가도 수돗물이 없었습니다." 하고 바이둘이 변명하듯 말했다. "샘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내 명령을 어겼습니까?" 하고 바바가 다그쳐 물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섬겨 온 당신이. 페르시아에서 메헤라바드로 소년들을 데려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래도 당신은 해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내 말을 어기고 내 경고를 무시하다니! 당신은 죽을 수도 있었지만, 아직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살 것입니다."
호되게 꾸짖은 뒤 바바는 바이둘을 용서하고 닐루에게 그를 치료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몇 주 뒤 회복되었다.
마야는 여전히 판치가니에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예고도 없이, 1941년 9월 10일 스와미 바바나난다는 마하발레슈와르에서 자살했다. 며칠 동안 경찰은 그를 그곳에 머물던 바바의 다른 사람들과 연관 짓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