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삶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메헤라뿐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사랑하는 님의 사랑받는 이인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생각은 바바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뿐이었다!
이 기간 동안 메헤라와 코르쉐드가 바바의 음식을 만들었고, 나자와 케이티는 여성들 일행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만사리는 메헤르 바바 저널의 글들을 구자라트어로 번역하느라 바쁘게 지냈다.1 마니는 글 관련 일과 서신 업무를 맡았고, 키티는 그녀에게 속기와 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1941년 7월 14일, 아즈메르를 떠나기 전 차티 바바가 갑자기 성을 냈다. 그는 빗자루로 이리저리 물건을 치며 큰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꼬박 세 시간 동안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바바가 와서 그와 함께 앉자 그는 조용해지며 웃었다.
16일 오전 9시 45분, 바바는 만달리와 여성들을 데리고 기차로 아즈메르를 떠나 만마드로 갔고, 거기서 다음 날 오후 2시 45분 찬지가 잠깐 바바를 만났다. 만마드에서 바바는 자신이 도착할 때 연인들이 보러 와서는 안 된다는 말을 전했고, 그래서 아흐메드나가르 기차역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망한 채 돌아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실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내면으로는 그것이 고통을 일으키면서도 마음을 사랑하는 님께 집중시키는 달콤한 희망이다.
바바는 자정에 아흐메드나가르에 도착해 7월 18일 오전 4시까지 네 시간 동안 기차 칸에 머물렀다. 사로쉬만이 그를 만나 바바의 다음 단계 작업과 관련된 지시를 받을 허가를 받았다. 날이 밝기 전 사로쉬를 만난 뒤, 바바는 일행과 함께 기차역을 떠나 버스와 자동차를 타고 메헤라바드로 향했다.
바바는 이미 1941년 8월 1일부터 6개월간 엄격한 은둔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해 두었고, 펜두와 만달리는 그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펜두와 칼레마마는 메헤라바드 언덕 네 모퉁이에 네 채의 오두막을 세우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는 만달리이거나 고용한 마을 사람들일 네 명의 야간 경비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누구든 그 부지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바바에게 아주 작은 방해조차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바바가 메헤라바드로 돌아왔을 때, 나그푸르 출신의 젊은이 판크라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판크라지는 바바의 은둔 동안 다르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바가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며 메헤라바드에 와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그는 나그푸르에서 들은 노리나의 연설에 크게 감동받았고, 스승을 직접 만나려고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각주
- 1.그러나 바바의 담화를 만사리가 구자라트어로 옮긴 이 번역본들은 끝내 출판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