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남자들에게 그 늙은 머스트와의 접촉이 끝날 때까지 금식하라고 지시했다. 바바는 팔루콜라에게 음식을 조금 먹이고 그와 함께 앉았지만, 그것도 겨우 10분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접촉에 크게 만족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그들은 그날 아침 9시 곧바로 마드라스로 돌아가는 길에 올라, 자정에 그곳에 도착했다. 바바는 아디에게 자기 차를 몰고 방갈로르로 돌아가라고 하고, 자신은 바이둘과 잘 케라왈라를 데리고 기차로 찬다로 갔다. 바바는 찬다에서 숲 깊숙이 살던 로헤왈라 바바라는 5경지 머스트를 접촉했다. 이 머스트는 철도 폐품장에서 주워 온 고철 조각들을 모아 숲의 나무 꼭대기에 높이 매달아 두었다.
바바는 나그푸르로 가서 그곳에서 더 많은 머스트들을 접촉했다. 그다음 그들은 델리행 기차에 올랐고, 거기서 자이푸르행 다른 기차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델리에서는 자이푸르행 기차가 떠나기 전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므로, 바바는 남자들을 데리고 찰리 채플린의 새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보러 갔다.1 바바는 그 영화를 대단히 좋아했다.
"이 영화는 내가 일곱 번이라도 보고 싶었을 유일한 영화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메헤라바드 만달리에게 편지를 써서 모두가 이 영화를 원하는 만큼 여러 번 보라고 지시했고, 현행 제한 때문에 영화 관람이 금지된 사람들도 이 영화가 자기 지역에 오면 이것만은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부와 남부, 동부를 거쳐 2주 동안 거의 5,000마일을 여행한 뒤, 바바는 1941년 2월 18일 밤늦게 자이푸르로 돌아왔다. 에이지는 바바의 최근 여행을 이렇게 요약했다. "지칠 뿐 아니라 말 그대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이 여정 내내, 바바는 밤마다 문자 그대로 붐비는 3등 열차 칸에서 지냈다. 낮에는 끊임없이 머스트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람나드와 마드라스는 숨이 막힐 만큼 더웠고, 인도 여행에 늘 따르던 전시의 어려움에 더해, 바바가 럭나우에 들어갔을 때는 폭동까지 일어났다. 캘커타에서도, 그리고 바바가 방문한 다른 곳들에서도 시민 소요가 일어났다.2
"메헤르 바바가 이 머스트들에게 품었던 그 큰 사랑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머스트를 접촉하기 위해 그는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걸어서, 황소수레를 타고, 말과 낙타를 타며,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더위와 비와 추위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불편을 겪으며 수천 마일을 여행하곤 했다.
각주
- 1.《위대한 독재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풍자적으로 공격한 작품이었다. (채플린은 나치의 만자 문양을 배신의 상징인 '이중 십자'로 묘사했다.) 히틀러는 이 영화에 격분해 상영에 항의했다.
- 2.머스트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바는 자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전해 두었다. "여러분에게 내린 모든 명령[이를테면 주 2회 금식 같은 것]은 이미 말한 대로 1941년 7월 31일까지 따라야 한다. 그러나 1941년 2월 1일부터 2월 20일까지는 이 모든 명령을 단지 절대적으로 따를 뿐 아니라 최대한의 열성을 다해 따르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