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판치가니에서 메모가 화를 내며 방갈로를 뛰쳐나가 덤불 뒤에 숨었다. 바바가 직접 그녀를 찾으러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바바는 나나 콜리라는 하인을 보내 그녀를 찾게 했다.1 나나가 그녀를 찾았을 때, 그는 집으로 돌아오라고 청했다. 그러나 쉬린마이의 분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그녀는 단호하게 응하기를 거부했다. 그 소식을 들은 바바는 그녀에게 갔다. 쉬린마이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바바는 마침내 그녀에게 질린 듯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바바는 다시 나나를 보냈다. 나나가 바바가 얼마나 속상해하는지를 쉬린마이에게 설명하자, 그녀는 돌아왔고 그 일은 잊혔다.
1938년 6월 2일 목요일, 비슈누의 사촌 인두와 그녀의 남편 비슈와나트 S. 할단카르가 판치가니로 바바를 찾아왔다. 비슈와나트는 직업이 금세공인이었고, 태평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비슈와나트가 그 도시 출신이었기 때문에, 바바는 그들에게 벨가움에 대해 물었다. 바바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구상 중인 아쉬람의 후보지로 그 지역을 둘러보는 데 관심을 보였고, 4일에 비슈누와 함께 하루 동안 그곳에 갔다. (찬지는 아르나바즈와 나르기스를 푸나로 데려갔고, 벨가움에서 바바와 비슈누를 만났다.) 바바는 벨가움을 둘러보는 안내를 받았고, 그곳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곳은 비용이 감당할 만했고, 기후도 온화해서 서양인들에게 적합했으며, 푸나와 아흐메드나가르에서도 멀지 않았다. 또 그에게 보여 준 부지는 그늘진 망고나무들로 가득했다.
나발 탈라티는 5월 25일 나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0일, 그는 마흔다섯 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뜻밖의 죽음 소식은, 메헤라바드에서 바로 앞선 침묵의 날에 스승이 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 가장 가까운 만달리 중 한 사람이 올해 안에 죽을 것입니다."
1938년 6월 15일 수요일, 바바는 모하메드 머스트와 남녀 만달리와 함께 판치가니에서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왔다. 메헤라바드 언덕의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로쉬는 바바와 여자들이 마을의 P.W.D. 관개 방갈로에 머물도록 마련해 두었다. 모하메드는 메헤라바드로 돌려보내졌다. 바바는 거의 날마다 아디 시니어의 운전으로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메헤라바드로 가서, 자신의 지하 묘실 위의 돔과 탱크 위층, 산원 등 건축 공사의 진척 상황을 살폈다. 때로는 하루에 두 번 가서, 펜두와 칼레마마, 나오로지에게 가능한 한 빨리 공사를 끝내라고 독려했다.
각주
- 1.나나 콜리와 그의 아내 타니는 오랜 하인들이었으며, 1920년대 메헤라바드가 설립된 때부터 그곳에서 일해 왔다. 대부분의 고용인들과 달리 그들은 바바에 대한 사랑에서 일했고, 여러 해 동안 계속 그렇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