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점은 메르완지가 이 가잘을 단 몇 분 만에 썼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야자술 가게 손님들까지 응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뒤 그 아르티는 구자라트 주간지 카이저-이-힌드에 실렸는데, 이 신문에는 바바잔에게 바친 메르완지의 가잘도 이미 게재된 바 있었다.
1917년 여러 차례에 걸쳐 바바잔은 메르완지에게 이렇게 촉구했다. "내 아들아, 가거라!... 이제 힌두에게서 네 몫을 받아라." 한편 1917년 7월, 우파스니 마하라지는 쉬르디의 칸도바 사원에서 사코리 마을의 화장터로 거처를 옮겼다. 메르완지는 우파스니의 새 거처를 정기적으로 찾았고, 때로는 동행하며, 때로는 혼자 기차를 타고 사코리로 갔다. 기차 안에서 메르완지는 종종 지저분한 3등칸 화장실 문 근처 바닥에 앉곤 했다. 그는 치탈리역에서 내려 사코리까지 9마일을 걸어갔다.
낯선 이들의 눈에 메르완지는 술에 몹시 취한 사람처럼 보였고, 때로는 실제 취객처럼 비틀거리기도 했다. 아버지의 야자술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메르완지는 아직 완전히 물질을 의식하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 세계를 희미하게만 알아차렸고,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것 처럼 자기 육체를 느끼지 못했다. 메르완지는 하나님의 의식을 체현하고 있었고, 그가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내면의 노래가 그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동 조종"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고, 신성한 뜻이 이끄는 충동에 따라 행동했다.
한번은 혼자 사코리로 가는 길에, 먼저 지나치는 치탈리역이 아니라 코파르가온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충동을 받았다. 밤 열 시, 날은 몹시 추웠지만 가벼운 면 코트와 바지 차림의 메르완지는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마을은 역에서 겨우 2마일 거리였지만 그곳에 도착하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 공교롭게도 사드구루 나라얀 마하라지가 코파르가온의 신도들을 방문하고 있었지만, 메르완지는 그를 만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는 도시를 지나 곧장 사코리(약 10마일 거리)로 향했다.
길 한복판에서 경찰관 한 명이 메르완지를 세우고, 앞쪽에는 도둑이 많으니 어두운 길을 헤매지 말라고 경고했다. 경찰관은 메르완지의 코트 소매를 붙잡고 코파르가온에서 하룻밤 묵으라고 설득했지만, 메르완지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팔을 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