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히 말한다. 영혼 깊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바로 내 목소리다. 영감의 목소리, 직관의 목소리, 안내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을 통해 나는 말한다.
나의 외적 침묵은 영적 수행이 아니다. 한번은 한 헌신자가 완전한 스승에게 왜 단식하느냐고 물었다. 완전한 이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구도자가 아니다. 나는 완전하다. 그러니 완전을 얻기 위해 단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 단식한다."
영적 구도자는 완전에 도달한 분처럼 행동할 수 없지만, 완전한 분은 다른 이들을 위해 구도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 문학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칠판에 알파벳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더 이상 문학석사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침묵은 오로지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시작되었고 유지되어 왔다.
영성에 대해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IT)을 모르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낫고, 공부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낫고, 느끼는 것보다 체험하는 것이 낫고, 무엇보다도 그것(IT)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
이어 바바는 제3의 눈에 대해 설명했다:
눈이 완전한 의식으로 안쪽을 향하면, 이 눈[그의 이마 중앙을 가리키며]이 열리고, 그러면 오직 내면만 보인다. 이것이 통찰이다. 그때 합일을 추구하게 된다.
지금 너희는 합일을 갈망하지만, 정작 합일하고자 하는 그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눈이 안으로 향하고 이 눈이 열리면, 너희는 갈망하던 그분을 보게 되고 합일에 대한 갈망은 더욱 뜨거워진다.
눈을 안으로 돌리는 일은 기계적으로 할 수 없다. 수련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승은 1초도 안 되어 그렇게 해준다. 너희는 참자아를 본다.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뀐다. 그 변화는 그 무엇과도 다르다!
메리가 물었다. "당신은 예전에, 일곱 번째 경지에 이르러 하느님과 완전한 합일을 얻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환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중간 경지들을 신경 써야 합니까?"
이에 답하며 바바는 받아쓰게 했다. "합일은 실재한다. 그러나 1초뿐일지라도 경지들을 통과해야 한다. 사드구루나 아바타가 원하면 너희를 1초 만에 일곱 번째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 1초 동안에도 너희는 여섯 경지 전체를 통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