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가까워지자 바바는 뉴욕에 있는 동안 외부인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새 사람도, 인터뷰도, 홍보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리나는 이미 스승의 도착 소식을 몇몇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의 방문을 홍보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노리나는 이 사실을 배에 있는 바바에게 전보로 알렸고, 바바는 모든 것을 취소하라고, 인터뷰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전보로 답했다. 1934년 12월 12일 수요일 배가 뉴욕에 정박했을 때, 신문 기자들과 사진기자 무리가 바바의 객실로 들이닥치려 했지만 바바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고 찬지에게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 외국에 바바가 도착할 때 흔히 그랬듯, 이번에도 하선이 다소 지연되었다. 꽤 오래 기다린 끝에 언론은 흩어졌다. 한 신문 기사는 바바가 스웨터와 코트, 모자를 착용하고 은 손잡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이민 당국자들이 그에게 말을 시키려 했지만, 그는 그저 미소만 짓고 비서가 대신 말하게 했다."
이민 당국은 바바의 이전 두 차례 미국 방문 사실을 전달받았고, 그는 입국해 60일간 체류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와 일행은 불필요한 심문 없이 세관을 통과하도록 허용되었다. 세관 구역을 나온 뒤 바바는 노리나, 나딘, 엘리자베스, 민타, 그레이엄 펠프스 스톡스의 환영을 받았다. 스톡스는 바바에게 다시 자기 집에 머물라고 초대했지만, 아마도 체류 조건을 붙였기 때문인지(만달리 중 두 명만 수용, 그리고 특정 날짜까지만 가능), 일행은 택시 두 대로 525 렉싱턴 애비뉴의 고층 셸튼 호텔로 향했다. 그곳은 노리나가 바바를 위해 방(3104호)을 마련해 둔 곳이었다. 라노와 노니는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1
바바가 개인 면담을 취소했는데도, 뉴욕주 스케넥터디의 젊은 부부 다윈과 진 쇼는 바바를 몹시 만나고 싶어 했다. 다윈 사이러스 쇼는 여러 해 동안 종교, 철학, 신비주의를 공부해 온 진지한 구도자로서 삶의 신비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그와 진은 둘 다 예수와의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 다윈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매우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것이라고 강하게 느꼈다. 그보다 2년 전인 1932년 봄, 그는 쉬리 메헤르 바바가 미국에 온다는 신문 기사와 제자들이 바바를 위대한 영적 인물로 본다는 내용을 읽고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각주
- 1.화가 조지아 오키프(구르지예프에 관심이 있었던)와 사진작가인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셸튼 호텔 28층 아파트에 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