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거의 한 달 동안 바바와 함께, 같은 곳 같은 지붕 아래 머물며 매 순간 마음에 부어지는 그분의 신성한 동행과 사랑의 감로를 마셨다. 또한 서로 다른 기질을 조화롭게 하나로 묶는 스승의 일하심을 체험했고, 오직 완전한 스승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음을 제압해 각자가 그분의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하는 몇 가지 방식을 경험했다."
바바는 자신이 곧 돌아오겠다고 확언하고,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늘 그를 기억하도록 그들에게 여러 임무를 맡겼다. 또 돌아올 때까지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지시했다.
바바는 포르토피노에서의 체류를 매우 즐겼고, 포르토피노가 영적 역사에서 차지할 자리는 확고하다. 포르토피노는 언젠가 크리슈나 경과 연관된 성지 브린다반과 같은 곳이 될 것이다.1 바바는 서양의 고피들에게 함께함을 베풀었고, 포르토피노의 해변은 그들의 눈물로 흠뻑 젖었다. "바바의 미소와 광채, 그분의 일하심과 릴라가 그곳에 있다!"라고 에이지가 말했다. "그분의 연인들은 분명 그분의 방문을 기리기 위해 그곳으로 순례를 갈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1933년 8월 3일 미국으로 돌아간 뒤 바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두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가장 사랑하는 바바께,
당신은 겉으로는 우리를 떠나셨지만, 내적으로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당신 이야기를 하고, 매일 밤 당신을 꿈꿉니다. 당신은 우리 모든 꿈의 성취이자 깨어 있는 순간들의 기쁨입니다.
포르토피노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낙원으로 남을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선하셨고 또 얼마나 사랑이 넘치셨는지요!
사랑하는 바바, 제 마음은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빅토리아호의 바바 선실은 이번에도 좁았고, 아라비아해가 매우 거칠어 항해는 더욱 불편했다. 배는 장난감처럼 요동쳤고 찬지는 심한 뱃멀미를 했다. 바바는 항해 대부분을 선실에서 지냈지만, 산책하려고 갑판에 나왔을 때 호기심 많은 파르시 승객들이 그를 만나려 했다. 그러나 만달리가 이를 막았다.
열흘간의 항해 끝에 그들은 1933년 8월 4일 금요일 오전 8시 봄베이에 도착했고, 바바의 형 베헤람과 나발 탈라티의 영접을 받았다. 메모, 루스톰, 프레이니, 굴마이, 아디 시니어가 마커와 함께 30분 뒤 배에 올랐다.2 바바는 그들과 함께 나발과 디나의 집으로 갔다.
각주
- 1.크리슈나 경은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마투라에서 태어나 살았다. 크리슈나의 강림 시기에, 그의 고피들(여성 제자들)은 수 마일 떨어진 브린다반에 살고 있었다.
- 2.루스톰은 미국과 중국에서 날데라호를 타고 1933년 6월 16일 인도에 돌아온 상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