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의 응답은 즉각적인 사랑과 빛의 물결이었다. "시원하고 맑은 달빛 속에서 목욕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데슈무크는 나중에 말했다.
데슈무크는 신문에서 바바의 사진을 보자, 이미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분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주님에게 더욱 끌렸고 그분의 다르샨을 갈망했다. 데슈무크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그분의 눈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신성한 인도의 확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의 눈빛은 보이지 않는 저 먼 땅에서 온 진리의 소식을 내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삶의 영원하고 무한한 근원과 목표에 대한 최종 깨달음이 있습니다."
데슈무크는 1932년 12월 8일 목요일, 나이츠브리지 호텔에서 바바를 만나러 왔다. 그는 교수인 맥그레거-모리스 부인과, 원탁회의 참석차 런던에 와 있던 저명한 마라티 작가이자 정치인 N. C. 켈카르 씨를 데리고 왔다.
면담 중 바바는 젊은 데슈무크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데슈무크는 자신이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철학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바가 장난기 있게 물었다.
데슈무크는 대답했다. "그것은 숨겨진 실재를 드러내는 학문입니다."
미소 지으며 바바는 답했다. "나에게 철학이란 단순한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메헤르 바바를 직접 대면한 일은, 훗날 데슈무크 박사로 불리게 된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 다르샨이 그에게 철학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열렬한 제자가 되었고, 바바의 집필 및 출판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이상적" 혹은 "완전한" 소년을 찾는 바바의 지속적인 탐색은 1927년 메헤르 아쉬람에서 시작되어 1958년까지 이어졌다. 바바의 개인적 일을 맡길 적합한 소년을 찾는 일은 그가 가는 곳마다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세월 동안 많은 소년들이 데려와졌고, 바바가 짧은 기간 곁에 두었던 한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 돌려보내졌다. 그리고 이때 런던에서도 바바는 몇몇 이들에게 그런 소년을 찾아 나서라는 임무를 주었다. 몇몇 영국 소년들이 호텔의 바바에게 데려와졌다. 그중 한 소년은 바바에게 매우 끌렸고, 3일 동안 머물렀다.
어느 날 그 소년이 비슈누에게 물었다. "그분은 어디 계세요?"
"누구 말이니?" 비슈누가 물었다.
"저 긴 머리의, 말 못 하는 신사요!"
비슈누는 웃으며 말했다. "그분은 지금 바쁘시다."
"저는 늘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요." 소년이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