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노래하기 시작한 서양
1932년· 바바 38세페이지 1,406 / 5,444
마가렛은 바바에게 편지를 썼다: "브레이멘호가 닻을 올리고 대양을 향해 떠나면서, 망연자실한 킴코를 연락선에 태워 사우샘프턴으로 돌아가게 했을 때는 참으로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은 마치 태양신경총이 도려내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브레이멘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고, 사랑하는 당신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 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님이여, 당신은 얼마나 많은 사랑을 안고 가셨는지요. 제 온 가슴은 당신의 것이며,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초를 세듯 뛰고 있을 뿐입니다."
찬지는 기록했다: "바바도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슬픔을] 느끼고 계십니다."
브레이멘호에서 바바와 아디 주니어는 2등석 바깥 객실(C 데크 490호)을 함께 사용했고, 베헤람, 찬지, 카카, 가니는 다른 객실에 있었다. 항해 중 바바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은둔해 지내는 편을 선호했다. 바바는 보드에 이름을 하나씩 철자해 적으며 뒤에 남겨둔 사랑하는 이들을 자주 떠올렸고,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할 때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한 전보가 날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바바와 영국에 있는 이들 사이를 오갔고, 그 안에는 사랑하는 님의 노래가 지닌 달콤한 선율이 메아리쳤다.
바바는 가끔 아침과 저녁에 갑판을 한 시간가량 산책했고, 동행자 가운데 한 사람과 탁구를 쳤다. 매일 오후에는 배 안의 영화관을 찾았다. 그 밖의 시간에 바바는 객실에 머물며 만달리와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거나, 폴 로브슨 음반을 듣거나, 쿠엔틴·메러디스·마가렛 스타와 일반 면담이나 개인 면담을 했다.
미국에 가까워지자 바바는 새 메시지를 구술해 배의 인쇄기로 인쇄하게 했다. 처음에는 만달리 가운데 누구도 바바가 아직 바다 위에서 왜 이런 수고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1932년 5월 19일, 증기선이 뉴욕에서 40마일 떨어졌을 때 인터뷰를 요청하는 신문 기자들이 바바의 객실로 몰려왔다. 바바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고, 대신 찬지와 쿠엔틴(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려 애썼다)을 통해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메시지 사본을 건넸다. 그제야 바바의 의도가 드러났다.
메헤르 바바가 인쇄하게 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어떤 교파나 사회나 조직을 세우러 온 것이 아니며, 새로운 종교를 세우러 온 것도 아닙니다. 내가 줄 종교는 많은 것들 뒤에 있는 하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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