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장마비로 거의 죽을 뻔했다. "맙소사! 그 소녀가 기차에 타고 있잖아. 내 책임인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짐이 전부 그 애에게 있고, 내 여권도 거기에 있어." 나는 수중에 돈이 거의 없었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기차는 떠나버렸다. 나는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승강장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절망한 나는 바바에게 말했다.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그 소녀는 제가 맡고 있었는데, 이제 짐과 돈을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꼼짝없이 발이 묶였습니다. 이탈리아어도 한마디 못합니다. 이제 누구를 찾아가야 합니까?"
이 지옥 같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10분에서 15분쯤 지난 뒤 기차가 갑자기 돌아왔다. 그 빌어먹을 기차는 객실이든 객차든 뭔가 하나를 떼어내려고 입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중에는 그 빌어먹을 한밤중에 기차를 서너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나는 그 내내 찬지에게 욕을 퍼부었다.
파리를 구경시켜 준 뒤, 아디 주니어는 아일린을 기차로 마르세유까지 데려가 인도행 배에 태우고 런던에서 바바와 합류했다. 아일린 네틀턴은 다시는 바바를 만나지 못했다.
한편 1932년 4월 5일 화요일 아침, 베니스에 있던 바바는 성 마르코 광장을 구경하고 예술품과 정교하게 조각된 가구와 비품, 수놓은 커튼으로 가득한 궁전을 둘러보았다.1 호텔로 돌아온 뒤, 베헤람과 아디 시니어는 자신들이 가져온 시타르와 하모니엄 반주에 맞춰 에니드를 위해 노래했다. 바바는 타블라로 능숙하게 장단을 쳤다.
오후에는 일행이 유명한 곤돌라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내려갔다. 평소 바바를 자주 촬영하던 베헤람은 카메라를 가져와 스냅사진 몇 장을 찍었다. 밤에는 버스터 키턴의 영화를 보러 갔다.
6일 아침, 바바는 기차로 베니스를 떠나 밀라노로 갔고 에니드는 일행과 동행했다.
정오 무렵 기차가 밀라노 역에 멈추자, 전년에 바바를 만났던 제노바의 쿤즈 부인이 아들과 함께 일행을 맞으러 나왔다. 그녀는 바바에게 말했다. "저는 이 위대한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을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택시를 타고 서둘러 시내를 둘러보고 에니드의 사무실에 들러 우편물을 찾은 뒤, 바바와 만달리는 그날 오후 3시 40분에 기차로 여정을 이어갔다.
7일 정오, 도버에서는 키티와 그녀의 오빠 어니스트, 그리고 퀜틴이 일행을 맞았다.2 바바는 기차로 런던까지 계속 가기로 한 일정을 갑자기 바꾸었다.
각주
- 1.이곳은 십중팔구 두칼레 궁전(도제의 궁전)이었을 것이다.
- 2.그의 도착에 대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새 메시아는 8년간의 침묵 서약 때문에 항만 당국과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하여 바바의 영국 입국이 지연되었다. (『뉴욕 타임스』, 1932년 4월 8일, 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