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답에 바바는 흡족해했다.
1931년 2월 동안 나식뿐 아니라 먼 곳들에서도 사람들이 매일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러 왔다. 바바는 또한 지금까지 비밀에 부쳐져 있던 페르시아 여행과 관련된 몇 가지 일을 처리하려고 봄베이에 몇 차례 다녀왔다.
이 기간 중 한 번 바바는 만달리 회의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형편이 이렇게 되어 내게는 더 이상 돈이 없다. 나는 자금이 절실하고, 이제 더는 너희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할 수 없다. 굶주릴 각오가 있다면 내 곁에 남아라. 이제부터 나와 함께 있으려면 너희는 지금보다 더 큰 궁핍을 겪어야 한다. 그러니 너희 모두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내게 결정을 말해라."
모두 남기로 했고, 바바는 다시 경고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다. 내게는 남은 자금이 없고, 앞으로 들어올 돈도 없다. 너희는 이제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큰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모두는 무슨 일이 닥치든 바바와 함께 남을 각오였다.
1931년 2월 28일 토요일, 바바는 나식에 있는 루스톰의 새 영화관 개관식을 거행했다. 우주 영화관의 스승의 손으로 써클 시네마가 공식적으로 개관했다.1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 와 다른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남자들 몇몇은 루스톰의 극장에서 일했다. 베헤람은 영사기사였고, 부아사헵은 출납원이었으며, 다른 이들도 임금 없이 각기 다른 일을 맡았다. 루스톰은 그들의 식사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극장 자금 조달 때문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운영비를 충당할 만큼 수입이 나지 않을 때면 만달리의 식사를 마련하기가 어려워졌다.
루스톰, 비슈누, 찬지, 라오사헵과 함께 봄베이에 4일간 다녀온 뒤, 바바는 1931년 4월 18일 토요일 나식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 오전 10시 써클 시네마 무대에서 만달리 회의를 소집했다.
"나는 나식을 떠나 어디선가 은둔 생활을 하려고 한다." 그가 설명했다. "내가 입을 열게 되면 [침묵을 깨면] 10월에 돌아오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기한으로 은둔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각자의 책임을 잘 이해하고, 나를 위해 살며, 나를 기쁘게 해라."
루스톰이 말했다. "모두가 나와 협력해 준다면, 내가 겪는 이 어려운 시기도 지나갈 것입니다." 만달리는 바바의 은둔 기간 동안 루스톰과 협력하며 나식에 머물기로 동의했고, 바바는 매우 기뻐했다.
각주
- 1.초기에 써클 시네마는 메헤르 극장(Meher Theatre)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