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무척 즐거워하며 찬지를 통해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 힘쓰며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여라. 이제 나는 네가 방학을 맞아 올 수 있을 때까지 침묵을 깨는 일을 미뤄 두었다. 사랑을 담아, 바바."
1929년 11월 24일 일요일, 바바는 파드리가 머물도록 지시받은 탈라티 가족의 집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나발은 최근 자기 집 앞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를 설명했다. 그는 바바에게 물었다. "이처럼 혹은 다른 사고로 자연사 이전에 죽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에 바바가 설명했다.
사람이 자연사하기 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으면 즉시 다시 태어나, 지난 생에서 남은 시간을 채운 뒤에 죽는다. 어떤 이들은 1년, 2년, 3년, 4년, 혹은 5년을 살고, 그렇게 지난 생의 남은 기간을 마치면 사고사로 갑자기 끝난 그 생의 산스카라에 따라 다시 다른 몸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남은 시간을 채우는 데 필요한 기간보다 더 오래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며칠 만에, 어떤 아이들은 몇 달 만에, 또 어떤 아이들은 몇 년 뒤에 죽는다.
일반적으로 일곱 살까지의 아이들은 산스카라를 짓지 않는다. 일곱 살까지의 삶은 이전 생의 산스카라가 밀어 주는 "추진력"에 따라, 또 그것에 의존해 지나간다. 그 추진력이 부드럽든 거세든, 그에 따라 아이들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힌두교의 문즈와 조로아스터교의 나브조트 의식의 영적 의미는, 일곱 살 이후 아이들이 산스카라를 쌓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1 이 의식들의 더 깊은 영적 의미는 아이가 삶의 진지함 속으로 들어섰음을 알리고, 새로운 책임을 자각하게 하는 데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의식은 관례가 되어 버렸고, 아무도 그 영적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니 무의미하다. 사람들은 이런 의식을 매우 중시하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목적 없는 일, 그저 타마샤[구경거리]일 뿐이다!
한편 바바는 찬지를 봄베이로 보내 좋은 소년을 찾게 했지만, 나흘 동안 찾아도 찾지 못하고 11월 27일 빈손으로 나식에 돌아왔다.
각주
- 1.힌두교의 문즈(munj)와 파르시교의 나브조트(navjot)는 기독교의 첫 영성체 의식이나 유대교의 바르 미츠바에 비유할 수 있다.
